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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창작

부모 자식 동시 100세 시대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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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도 100세 시대


요양병원을 방문하고 나오는데 1층 주차장 근처에 근조 화환이 보였다. 누군가 또 돌아가신 것이다. 병원에서 치료 및 연명하다가 더 좋은 곳으로 모실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지하 1층 영안실로 직행하기도 한다. 비 오는 날 좀 울적하다.

 

오늘은 평소 좋아하는 쌈장과 파스를 가져다 드렸다. 병원에도 파스를 주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것을 요구하신다. 99세의 연세면 파스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지만 임시방편으로는 아직도 통하나 보다. 훗날 걱정보다 일단 안 아프면 제일이라고 본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한다. 그러면 그 자식도 100세 시대인가. 부모는 한 120세 시대라고 하면 그 자식이 100세 시대인가 의문이 들고 놀랍기도 하고 신기한 시대이다. 의학 기술의 발전이 복지제도와 맞물려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는데 삶의 질도 같이 연장되는지는 알 수 없다.

 

자화상

 

언젠가는 요양병원에 가야 할 수 있다. 부모가 그런 것처럼 자식도 그 뒤를 따라가는 자화상인가. 옛 부모는 거부하는 것을 설득해서 또한 형제들과 싸우며 요양병원에 보내야 했지만 현시대는 불평 없이 알아서 스스로 가야 한다. 자화상이라도 좀 더 슬픈 자화상이다.



스스로 병원비, 장례비를 마련해야 하는 세대

 

부모를 모시며 살았고 자식들의 결혼 후 뒤바라지도 해야 하는 시대의 주인공들은 이제는 스스로 생활하면서 병원비 및 장례 비용도 마련해야 한다. 자식들이 잘 살아도 스스로 자신의 육신을 책임지기를 바라는 세대의 사람들은 경제 발전의 선봉장이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눈비 내린 2월, 겨울의 끝자락

 

겨울의 끝자락이지만 아직은 춥다. 만만치 않은 나이로 부모의 요양 병원을 방문하기에는 눈비 내린 길거리를 걷기에는 조심해야 한다. 비가 그쳐서 우산이 지팡이가 되기도 하지만 노인을 방문하기 위해 노인이 걸어간다. 무료 지하철이 그나마 마음에 든다. 눈비 내린 2월, 겨울의 끝자락이 손발을 시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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