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묘비명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먼 훗날 일이라 현실성이 없지만 재미로 또는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다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과거를 뒤돌아보고 반성하기도 하며 인생의 설정을 다시 정비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묘비명을 통해 달려가던 삶을 잠시 멈칫하고 피드백을 하여 되돌아보면 앞으로의 길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희망의 묘비명으로 나를 상기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유명인의 묘비명을 읽어보면 흥미로울 것 같다. 관점에 따라 허망하게도 느낄 수 있고, 저런 사람들도 그랬는데 하며 위안을 느낄 수 있고, 교훈으로 삼아 삶의 방향을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조지 버나드 쇼 :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의 극작가(1856-1950), 대표작-인간과 초인, 피그말리온이 있다. 1925년 노벨문학상 수상. <묘비명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니코스 카잔차키스 : 오스만 제국 출신, 그리스의 시인, 소설가(1883-1957)이다. 대표작으로는 그리스인 조르바(영화로 유명, 유튜브 참고)가 있다.
<묘비명;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주식 투자가로서 떠오르는 묘비명에는 어떤 것이 좋을까 생각해 보자.
"나는 무덤에서도 롱포지션이야. 내 주식 잘 가지고 있지?",
"나는 무덤에서도 숏을 친다(숏커버링)!",
"털릴 줄 알았지. 그러나 자유다.",
"아직도 본전 생각난다.",
"처음부터 하지 말 걸 하면서 계속 단타 쳤다.", "그때 손절할 걸."
실수 없이 투자하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들도 멀리서 좋은 숲만 보지 말고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난의 삶을 엿볼 수 있다. 한 가지는 완벽했을지 몰라도 그 외 다른 면은 실수투성이의 삶을 산 경우가 허다하다. 어차피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깊이 있게 알 수록 실망할 것이다. 언젠가는 인생의 석양이 든다. 석양이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것이다. 구름에 가려 후회하면서 저 멀리 사라져 가기도 하고, 안락하고 편안하게 노을이 지기도 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어떤 묘비명이 떠오를까 생각해 보자.
"바쁘게 살다 보니 여기에 누웠다.", "어, 어, 하다가 죽었소",
또는 배우자에게 남기는 사랑의 표현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
아니면 반대 표현으로 좀 서글프지만 " 웬수야 안녕!" 이런 일은 없어야 하겠다.
평생직장 생활을 했다면 "이제 쉰다.", 아니면 "오늘일지 몰랐다." 울적한 묘비명이다.
하루 아니, 한 시간 후도 모르는 것이 삶이다. 노년일수록 1년, 2년도 순간의 초침 울리듯 다가올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최선으로 살면 좋지만. 어디 인생이 그러겠는가. 허망할 때 허망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도록 개성 있게 선택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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